■ 학내 주요소식

러시아연구소, 노벨문학상 수상자와의 대화: 전쟁과 평화, 그리고 인간
2017.05.31

 

 

2017년 5월22일(월)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영원홀에서는 러시아연구소의 주최로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를 모시고 “전쟁과 평화, 그리고 인간”이라는 주제로 대담회가 개최되었다.


대담회에 앞서 서울대학교 성낙인 총장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작가에게 감사와 환영의 인사를 전하고, 이어서 뜻깊은 행사를 주최한 러시아연구소 관계자들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다음으로 러시아연구소장 변현태 교수가 작가에 대해 짧게 소개했다. 스베틀라나 알렉산드로브나 알렉시예비치는 1948년 5월 31일 우크라이나에서 벨라루스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작가로서 그녀는 1983년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1985년 '마지막 목격자들', 1989년 '아연 소년들', 1997년 '체르노빌의 목소리', 2013년 '세컨드 핸드 타임' 등 주요 작품들에서 2차 세계대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체르노빌 원전 사고, 1991년 소련의 붕괴와 러시아 연방 체제로의 전환기 역사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인터뷰를 토대로 하여 기록과 소설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녀의 소설은 ‘목소리 소설’로 지칭되는데, 이 형식을 통해 그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다성악적으로 펼쳐진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작품세계는 도스토옙스키, 20세기 러시아 수용소 문학의 거장인 바를람 샬라모프와 같은 러시아 문학 전통 외에 알레시 아다모비치와 같은 벨라루스의 작가를 문학적 전범으로 삼고 있다.


노어노문학과 박종소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본 대담회는, 삶 속에서 수많은 타인의 말을 들어온 작가의 요청에 따라 대학생들과의 ‘대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 전쟁을 묘사함으로써 작가가 기대한 사회적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전쟁이 인간 본성에 내재된 악에 토대한 것인지에 관해 작가의 견해를 물었다. 이에 대해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예술이 단번에 뭔가를 바꿀 수 없으며 선한 목적을 향해 개미처럼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비로소 세상은 변화될 수 있다고 피력했다. 그리고 자신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쓴 이유는 전쟁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였고, 특히 여자의 목소리를 빌려 집필한 이유는 남자는 총을 쏘고 전쟁을 하는 훈련을 받는 반면, 여자는 전쟁문화의 바깥에 위치하고 전쟁을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즉 전쟁에 대한 온갖 이상화를 경계하고 전쟁은 명백한 살인임을 분명히 하고 싶었으며, 여인들의 시각으로 보면 독일인도, 러시아인도 아름다운 인간일 뿐임을 보여줌으로써, 시대와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 여인들의 시각을 통해 세계를 그리고자 했다는 것이다. 


뒤이어 참혹한 전쟁의 시대, 현대를 살아가는 남성이 지향해야 될 가치에 대해 묻는 남학생에게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며 이러한 가치를 구현한 이상적 인물로 슈바이처 박사를 예로 들었다. 또한 정치인들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휴머니즘에 입각한 세계관을 꼽았다. 이어서 그녀는 10년 동안 체르노빌 사고 지역을 다니며 쓴 '체르노빌의 목소리'에서 기술이 인류의 윤리 도덕을 앞서기 시작한 이 시대에 대해 말하고자 했으며,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다룬 '아연 소년들'에서는 서로 간의 상이한 이념과 사상은 서로를 설득할 이유이지, 결코 죽일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전달하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약자의 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거나 혹은 들으려 하지 않는 권력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작품을 관통하는 정신이라고 파악한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스스로 외롭고 고독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한 보호자가 되어야만 하는 작가, 언론인의 소명에 대한 작가의 견해를 물었다. 이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자신의 주인공들을 약자가 아닌,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 ‘작은 사람들’이라고 정정하며 그들은 결코 ‘약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그들 작은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기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은 사람들의 삶의 기록의 단순한 수집가가 아니며, 인간은 무엇이며 진정한 인간은 얼마나 되는지, 사람들이 극단적이고도 비극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내는 힘을 찾아내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고백했다. 이는 인간 정신을 모으는 일로서, 이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를 보여주고, 비극적 상황 속에서 인간답게 사는 것은 힘들기는 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님을 알리려 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녀는 미래의 언론인에게 자연과학, 철학, 예술 등의 다양한 학문을 공부하여 자신만의 세계관을 형성하라고 조언했다. 특히 일상적 삶을 견고하게 둘러싸고 있는 진부함에서 벗어나 삶과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것을 주문하며, 진정한 자신을 이루는 것은 일생을 바쳐야할 만큼 어려운 일임을 설파했다.


네 번째 질문자는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작가의 세계 속에서 종교가 근절해야할 대상에 포함되는지를 물었다. 작가는 아이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호기심어린, 순수하고, 고착되지 않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임을 명확히 하고, 인류가 간직해온 가장 오래된 제도이자 인간과 사회를 지탱시켜 준 가장 강력한 신념인 종교는 근절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진리란 대화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며, 인간은 우주의 일부분이므로 인간의 삶에서 야기되는 문제를 우주 전체의 관점으로 확장시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화두를 어떻게 풀어내는지와 관련하여 글을 쓰게 된 계기를 묻는 다섯 번째 질문자에게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글을 쓰는 과정이란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나는 누구이며 이 모든 일들이 왜 일어나는가에 대해 부단히 질문을 던지는 가운데 새로운 영혼을 창조하는 일인 만큼 몹시 어려우며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고 답했다. 자신과 자신의 주변, 세계에 대한 애정이 글을 쓰는 동기가 되었다고 고백하며, 중요한 것은 인생을 흥미롭게, 즐겁게 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작가의 작품 속에 등장한 여성 스나이퍼의 사례를 예로 들며, 남을 죽일 줄 몰랐으나 참혹하게 살해당한 아군을 본 후 적대감으로 적군을 향해 총을 겨누게 되는 상황을 언급한 여섯 번째 질문자에 대해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제3차 세계대전에 대한 예견이나 이에 관한 발언들은 전쟁을 실체화할 수 있으므로, 이슈화 자체를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아름다운 아프가니스탄의 풍경과 결코 어울리지 않았던 탱크, 무기 등을 떠올리며, 인류가 그러한 시간을 겪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뒤이어 그녀의 작품 속에서 작가가 차지하는 위치가 관찰자와 참여자 중 어느 쪽인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교회를 지은 후 그 교회를 자신이 지었다고 외칠 필요 없이 그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듯이, 작가의 위치 또한 그러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러한 건물을 짓기 위해 어떻게 벽돌을 쌓아야하는가는 건축가의 일이듯, 작가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벽돌을 쌓아 총체를 구성해야하며, 이때 작가는 교향곡 안에 자신이 있으나 없는 듯이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하는 중에 질문을 던지지 않고 대담자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방법을 묻는 언론정보학과 학생에게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자신이 질문을 전혀 던지지 않는 것은 아니며, 단지 직접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은 다만 고착화된 형식적인 틀 속에 대담자의 생각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대담자가 일상적인 주변의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스스로 자기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대담자가 자신의 기억을 스스로 더듬어 가며 자기 자신에 집중하는 순간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책의 마지막 문장을 쓸 때 어떠한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악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자에게, 작가는 마지막 문장을 쓸 때는 매번 공허함을 느끼기에 슬프다고 답했다. 그리고 선악의 문제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이며, 이 문제는 도스토옙스키에게도 가장 중요한 문제였으며 그 또한 이 문제로 인해 굉장히 고통스러워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혼자 있을 때는 선악이 명확해 보이지만 복잡한 삶 속에서는 선악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기에,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배반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상이 변화됨에 따라 선악의 정의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하면서, 그녀 자신은 젊었을 적에 혁명가적 기질이 있었으나 나이가 들면서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 후, 더 이상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한결 부드러워졌다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선과 악은 별개임을 확실히 했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추구하는 새로운 형식이 어떻게 탄생한 것인지, 이 과정에서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형식이 영향을 미쳤는지를 묻는 노어노문과 대학원생에게, 우선 그녀는 도스토옙스키의 영향력은 세계관에 한정된 것이라 제한했다. 사회주의 체제의 흑백 논리 속에서 성장했던 그녀에게 인간의 심연에 내재한 비이성적인 모순성, 선악의 혼재에 주목한 도스토옙스키는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그 덕분에 실제 사람들과의 대담 속에서 그러한 모순성을 마주했을 때 그녀는 상처입지 않고 견뎌낼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어서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시골에서 그녀가 들었던 목소리들이 늘 자신을 따라다녔으며, 그 목소리들은 어떤 책보다도 강력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러시아문화에는 ‘목소리 시학’이라는 소설형식이 이미 존재했고, 예컨대, 제1차 세계대전 중에 군인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소피아 표도르첸코나, 자신의 스승인 알레시 아다모비치 등의 전범이 있었기에, 자신이 이 소설 형식을 무(無)에서 창조한 것이 아님을 밝혔다. 그녀는 40년 동안의 집필기간에 역사의 예술적 백과사전을 만들고 싶었고, 시대의 비극적 합창을, 다양한 인물들과 다양한 세계관이 모두 온전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합창을 만들고 싶었다면서 대화를 마쳤다.


본 행사가 시작되기 훨씬 전에 이미 정원이 초과되어 계단에 앉거나 벽에 기대어 듣는 진풍경이 연출된 이번 대담회에는 서울대 학부생ㆍ대학원생ㆍ교수님들은 물론, 타대 학생들과 교수님들, 부채 선물을 들고 포항에서 올라오신 아주머니, 대구에서 오신 스님까지 참석하여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작가의 인기를 실감하게 하였다. 이날 청중들은 치열한 질문 경쟁 속에 결국 질문하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대화 가운데에서 배어나오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삶과 문학에 대한 진지한 열정, 인간적인 겸손함, 사회악의 고발에 있어서의 치열함과 용기에 깊은 감동을 받고 강연장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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